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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여제 리사 수, 절망의 AMD를 세계 최강으로 만든 불가능한 여정

sunbee77 2026. 2. 1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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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출신 이민자에서 TIME 선정 올해의 CEO까지. 리사 수가 파산 직전의 AMD를 2,000억 달러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감동적 여정. 7가지 핵심 교훈과 극복의 리더십을 만나보세요.!

이민자 소녀에서 실리콘밸리 최고 CEO로

1969년 11월, 대만 타이난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리사 수(Lisa Su, 蘇姿丰).

 

그녀의 이름은 훗날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세 살 무렵, 어린 리사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태평양을 건넜다. 낯선 땅, 뉴욕 퀸즈의 이민자 가정에서 그녀의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뉴욕 시정부의 통계 담당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회계사이자 후에 사업가가 되었다. 많지 않은 수입이었지만, 부모님은 두 남매에게 단 하나의 교육을 강조했다. 바로 수학과 과학이었다. 일곱 살이 되자 아버지는 매일 리사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했다.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사업의 개념을 가르쳤다. 이민 가정의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그 속에는 미래를 향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AMD Chip Technology

열 살의 리사는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빠의 리모컨 자동차를 분해하는 것이었다.

부품 하나하나를 떼어내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다시 조립해서 고치는 과정이 그녀에게는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즐거웠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이 있었어요." 후에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그녀는 인생 첫 컴퓨터, Apple II를 손에 넣었다. 그 순간 그녀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뉴욕의 명문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한 리사는 1986년, MIT의 문을 두드렸다.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전기공학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어려워 보이는 전공이었기 때문이죠." 쉬운 길보다는 도전적인 길을 택하는 그녀의 성향은 이미 이때부터 드러났다.

 

MIT에서 그녀는 학부 연구 조교로 일하며 대학원생들을 위한 실험용 실리콘 웨이퍼를 제조했다.

여름에는 Analog Devices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반도체라는 미시세계에 빠져든 그녀는 학사, 석사를 거쳐 1994년 박사학위까지 모두 전기공학으로 받았다. 그녀의 박사 논문 주제는 "극소형 실리콘-온-인슐레이터(SOI) MOSFET"이었다.

 

당시로서는 증명되지 않은 기술이었지만, 이 연구는 훗날 반도체 산업의 효율성을 혁명적으로 높이는 기반이 되었다.


엔지니어에서 리더로: IBM과 Freescale에서의 도약

1994년, 스물다섯의 리사 수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첫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커리어는 1995년 IBM에 입사하면서 시작되었다. IBM 반도체 연구개발 센터의 연구원으로 시작한 그녀는 곧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당시 반도체 업계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반도체 칩의 연결 재료로 사용되던 알루미늄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려면 구리를 사용해야 했지만, 구리의 불순물이 칩을 오염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리사 수는 이 '불가능한' 문제에 뛰어들었다.

"제 전문 분야는 구리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문제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죠." 그녀는 IBM의 여러 디자인 팀과 협력하며 구리 반도체 기술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1998년, 그 기술이 출시되었다. 칩의 속도는 기존보다 20% 빠르고 효율적이 되었다. 새로운 산업 표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AMD CEO Lisa Su at Event

 

2000년, 그녀에게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다.

IBM의 CEO 루 거스너의 기술 보좌관으로 1년간 일하게 된 것이다. CEO 바로 옆에서 기업의 큰 그림을 보는 경험은 엔지니어였던 그녀에게 경영의 눈을 열어주었다. 그 후 그녀는 IBM 내부에서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Emerging Products' 부서를 혼자 설립하고, 열 명의 직원을 고용해 바이오칩과 저전력 반도체를 개발했다. 그들이 만든 첫 제품은 휴대폰과 휴대용 기기의 배터리 수명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2001년, MIT Technology Review는 그녀를 "35세 이하 최고 혁신가"로 선정했다. 더 큰 도전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IBM을 대표해 소니, 도시바와 함께 차세대 게임기용 칩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기존보다 성능을 1,000배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였지만, 그녀의 팀은 9개의 프로세서를 하나로 통합한 Cell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해냈다. 이 칩은 PlayStation 3의 심장이 되었다.

 

2007년, 리사 수는 IBM을 떠나 Freescale Semiconductor의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의 연구개발을 총괄하며 네트워킹 칩 사업을 맡았다. 그녀의 리더십 아래 Freescale은 재정을 정비하고 2011년 기업공개(IPO)를 준비할 수 있었다. 업계는 그녀의 능력을 주목했다.


파산 직전의 AMD, 구원 투수의 등장

2012년 1월, 리사 수는 AMD의 수석 부사장 겸 총괄 매니저로 합류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자란 그녀에게 AMD는 꿈의 직장이었다. "기술 분야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그리고 반도체에서 커리어를 쌓은 사람으로서, 미국의 대형 반도체 회사는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정말 흥분되었죠."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다. AMD는 절망의 끝자락에 있었다. 한때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 회사는 2014년 초, 주가가 역사적 최저점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2011년부터 누적 적자는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시가총액은 겨우 30억 달러에 불과했다. 파산 위기가 코앞이었다. 직원들은 불안에 떨었고,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AMD는 방향을 잃었다. PC 시장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잠식당하고 있었고, AMD의 주력 제품인 Bulldozer 프로세서는 시장에서 참패했다. 경쟁사 인텔은 여전히 압도적이었고,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는 Nvidia가 앞서 나가고 있었다. AMD는 모든 전선에서 밀리고 있었다.

 

2014년 10월 8일, 리사 수가 AMD의 사장 겸 CEO로 취임했다. 업계는 놀라움과 동시에 우려를 표했다. "정말 이 회사를 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리사 수는 명확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세 가지 위기: 기술, 시장, 그리고 신뢰

첫 번째 위기: 방향성의 상실

 

리사 수가 취임했을 때 AMD는 온갖 시장에 손을 대고 있었다. PC, 서버,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센서까지. 하지만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자원은 분산되고, 역량은 희석되었다. 기술 기업은 1등이나 2등이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AMD는 어느 분야에서도 선두가 아니었다.

리사 수는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렸다. "우리가 정말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녀는 모바일 칩 개발을 포기했다. IoT 센서도 내려놓았다. 대신 회사의 DNA인 고성능 컴퓨팅(High Performance Computing)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게임,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슈퍼컴퓨팅. 바로 이 분야들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시장들은 2014년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성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리사 수는 3~5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배팅해야 했다.

 

반도체 개발 주기는 3~5년이 걸린다. 오늘 설계를 시작한 칩이 시장에 나오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예측이 틀리면 회사는 끝이었다.


두 번째 위기: 기술적 도박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도체 업계는 전통적으로 '틱톡(Tick-Tock)' 개발 주기를 따랐다. 한 세대는 제조 공정을 개선하고(Tick), 다음 세대는 칩 설계를 개선한다(Tock). 이렇게 번갈아 가며 개선하는 이유는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사 수는 달랐다. AMD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제조 공정과 칩 설계를 동시에 혁신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제품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업계 애널리스트 한스 모제스만은 이를 "행성의 정렬"에 비유했다.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입니다."

 

AMD Ryzen Launch

 

엄청난 위험이었다. 무언가 하나라도 잘못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최신 데이터센터용 칩은 400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포함한다. 그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작동해야 한다. 리사 수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을 것이다.


세 번째 위기: 신뢰의 붕괴

 

기술적 도전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었다. 바로 고객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었다. AMD는 수년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Bulldozer의 참패 이후, 대형 고객들은 AMD를 믿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구글,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들은 AMD의 제품 로드맵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리사 수는 직접 이들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약간의 설득이 필요했어요." 그녀는 솔직했다. "제가 무엇을 할 것인지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여러분이 실제로 볼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려면 3년이 걸릴 겁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계속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분기마다 고객들에게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했다. 작은 이정표라도 달성하면 공유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신뢰가 쌓여갔다.


극복: 불굴의 실행력과 Zen의 탄생

리사 수의 극복 전략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했다. 첫째,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모았다. 둘째,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다. 셋째,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권투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CEO가 된 후 생긴 습관이었다. "링 위에서 상대와 맞서는 것처럼, 매일 도전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녀의 하루는 전쟁이었다. 엔지니어링 회의, 고객 미팅, 투자자 설득, 내부 조직 정비. 모든 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2015년, 회사의 방향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다. 2012년 AMD 매출의 10%만 차지하던 비PC 시장이 2015년에는 40%로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의 게임 콘솔 Xbox One과 PlayStation 4에 AMD 칩이 탑재되었다. 작지만 중요한 승리였다.

 

2016년 1월, 리사 수는 새로운 FinFET 기반 칩 라인업을 발표했다. Zen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Ryzen 프로세서와 Epyc 서버 프로세서였다. 7나노미터 공정으로 만들어진 이 칩들은 인텔의 10나노미터 칩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성능을 보였다. 그것도 훨씬 저렴한 가격에.

 

AMD Technology

 

2017년 2분기, 첫 번째 Zen 칩이 출시되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AMD의 CPU 시장 점유율은 거의 11%로 급증했다. Ryzen Threadripper는 고성능 컴퓨팅 시장에서 인텔을 압도했다. 리뷰어들은 극찬했다. "인텔의 절반 가격에 더 많은 코어를!"

리사 수는 멈추지 않았다. 2019년 3세대 Ryzen이 출시되었다. 고객들은 이제 확신했다. "AMD는 진짜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인텔이 비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텔은 14나노미터에서 10나노미터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공급 부족으로 2018년 고객들에게 공개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AMD에게는 천운이었다. 리사 수의 완벽한 실행과 인텔의 실패가 겹쳐지며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2019년, 리사 수는 S&P 500 기업 CEO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았다. 5,850만 달러. 주로 주식 보상이었지만, 이는 그녀가 AMD에 가져온 가치를 반영했다. 2014년 30억 달러였던 AMD의 시가총액은 2020년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24년 말 기준으로는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주가는 1,300% 이상 상승했다.


정상에서: 업적과 영향력

리사 수는 단순히 한 기업을 살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산업의 판도를 바꾸었다.

 

기술적 성취

 

2021년, 그녀는 IEEE Robert N. Noyce Medal을 수상했다. 반도체 분야의 최고 영예이며,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미국 에너지부는 AMD 칩을 선택해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에 탑재했다.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엑사스케일급 슈퍼컴퓨터 역시 AMD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핵 억지력 유지에 필수적인 고성능 컴퓨팅이었다.

 

2022년, AMD는 490억 달러를 들여 FPGA 제조사 Xilinx를 인수했다. 리사 수는 AMD의 회장이 되었다. 회사의 제품 포트폴리오는 완성되었다. CPU, GPU, FPGA. 이제 AMD는 모든 종류의 고성능 컴퓨팅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었다.

2024년, 그녀는 TIME지로부터 "올해의 CEO"로 선정되었다. 두 번째였다. 2014년에 이어 10년 만이었다. 같은 해 TIME의 "AI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회적 영향

 

리사 수는 기술적 리더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아이콘이 되었다. 그녀는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이민자로서, 그리고 기술 산업의 여성 리더로서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포브스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49위에 선정했다. Fortune은 "가장 강력한 여성" 12위로 꼽았다. National Diversity Council은 그녀를 "기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에 여러 차례 포함시켰다.

2020년, 카네기 재단은 그녀에게 "Great Immigrants Award"를 수여했다. 이민자로서 미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2021년, 그녀는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22년, MIT는 나노기술 연구를 위한 새 건물을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Lisa Su Building 12." 그녀가 청춘을 바쳐 공부했던 MIT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산업에 미친 영향

 

리사 수의 성공은 AMD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반도체 산업 전체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인텔의 독점이 무너지며 경쟁이 활성화되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더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AMD의 점유율은 10%에서 가까운 미래에 5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우드 컴퓨팅, AI, 5G 같은 차세대 기술의 기반이 되는 칩 시장에서 AMD는 이제 필수 플레이어다.

 

그녀는 또한 기업 문화의 변화도 이끌었다. AMD는 이제 투명성, 실행력, 그리고 끊임없는 혁신으로 알려진 기업이 되었다.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해마다 무엇을 계속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리사 수의 이 말은 AMD의 문화를 정의한다.


리사 수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1.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선택하라

리사 수는 항상 가장 어려운 길을 택했다. MIT에서 전기공학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IBM에서 구리 반도체 문제에 뛰어든 것도, 파산 직전의 AMD CEO를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제 전문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피하지 말고, 오히려 그곳으로 달려가라. 그곳에 진정한 성장과 기회가 있다.

 

2. 장기 비전을 가지되, 매일 실행하라

반도체 개발에는 3~5년이 걸린다. 리사 수는 2014년에 2019년의 시장을 예측하고 베팅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기다리지 않았다. 매일 고객들에게 업데이트했고, 작은 이정표마다 달성했다.

장기 목표는 크게 그리되, 실행은 매일 작게 쪼개서 하라. 그리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라.

 

3. 집중의 힘: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리사 수의 가장 큰 결정은 포기였다. 모바일 칩, IoT 센서, 그 밖의 여러 사업을 내려놓았다. 대신 고성능 컴퓨팅 하나에 집중했다.

"1등이나 2등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어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용기가 성공의 열쇠다.

 

4. 신뢰는 약속을 지킴으로써 쌓인다

AMD는 신뢰를 잃었다. 리사 수는 이를 되찾기 위해 3년간 꾸준히 소통하고, 약속하고, 지켰다. 한 번에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다. 작은 약속을 계속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5. 위기는 기회다

인텔의 실패는 AMD에게 기회였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리사 수가 이미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다.

 

6. 이민자, 여성,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강점으로

리사 수는 대만 출신 이민자였고, 남성 중심의 반도체 산업에서 여성 리더였다. 그녀는 이를 핑계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과 끈질긴 노력으로 이를 강점으로 바꿨다.

 

7. 건강과 균형: 권투에서 배운 멘탈

CEO가 된 후 그녀는 권투를 시작했다.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회복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링 위에서 상대와 맞서듯, 비즈니스에서도 매일 도전과 맞서야 한다. 하지만 훈련과 휴식의 균형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계속되는 여정

2024년 현재, 리사 수의 순자산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녀는 억만장자가 되었다. AMD의 시가총액은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놀라운 성공이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지난 5년이 자랑스럽지만, 다음 5년은 더 경쟁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베팅을 해야 합니다." 2024년, AMD는 AI 칩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Nvidia가 장악한 이 시장에서 AMD는 다시 한 번 도전자다.

 

리사 수는 남편 대니얼 린과 함께 텍사스 오스틴에 살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녀와 Nvidia의 CEO 젠슨 황은 사촌지간이다. 두 사람은 각자 AMD와 Nvidia를 이끌며 AI 칩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가족 모임이 흥미로울 것 같다는 농담이 업계에 떠돈다.

 

Lisa Su Portrait

 

리사 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매일 아침 권투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선다. 새로운 도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AI, 양자 컴퓨팅, 차세대 데이터센터. 그녀가 또 어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당신이 오늘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해마다 무엇을 계속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리사 수의 이 말은 그녀 자신의 인생을 정의한다. 세 살의 이민자 소녀에서 실리콘밸리 최고의 CEO까지. 그 여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매년, 한 걸음씩 전진한 결과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위해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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