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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쇼핑백 뒤에 숨겨진 진실 — 자미라 하지예바, 영국 최초 '설명되지 않는 부' 명령의 주인공

sunbee77 2026. 4. 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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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국영은행 회장의 아내 자미라 하지예바. 10년간 해로즈에서만 270억 원을 쓴 그녀는 영국 역사상 최초로 '설명되지 않는 부 명령(UWO)'을 받은 인물이 되었다. 부패, 자금 세탁, 법정 공방까지 — 그 충격적인 실화를 서사형으로 풀어냈다.

"10년, 1,630만 파운드, 54장의 신용카드 — 그리고 하나의 역사적 판결"


해로즈 런던 외관


▲ 런던 나이츠브리지의 해로즈 백화점 — 자미라 하지예바가 10년간 드나든 '황금의 신전' (출처: Pexels)


프롤로그: 하나의 영수증이 세상을 뒤흔들다


런던 나이츠브리지, 해가 지면 금빛 가로등 불빛이 도로를 물들이는 이 거리에는 전 세계 부자들이 꿈꾸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해로즈(Harrods)다. 화려한 황금 조명 아래 자리한 이 백화점은 그냥 '쇼핑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이자, 권력과 돈이 만들어낸 신전이다.


그 신전을 10년간 자신의 동네 슈퍼마켓처럼 드나든 여성이 있었다.

2006년부터 2016년, 10년 동안 그녀가 해로즈에서 쓴 돈은 단 하나의 백화점에서만 1,630만 파운드(약 270억 원)에 달했다.

하루에 60만 파운드(약 10억 원)를 쓴 날도 있었고, 54장의 신용카드를 동시에 사용했다. 보석, 향수, 디자이너 의류, 어린이 완구, 심지어 디즈니 공주 변신 체험에까지 수십억 원이 흘러들었다.


그 여성의 이름은 자미라 하지예바(Zamira Hajiyeva).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이 여성은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화려한 명성 때문이 아니었다. 2018년,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적용된 '설명되지 않는 부 명령(Unexplained Wealth Order, UWO)'의 대상자가 되면서부터였다.


1부: 아제르바이잔에서 런던으로 — 한 여성의 배경


자미라 하지예바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출신이다.

그녀의 남편 자한기르 하지예프(Jahangir Hajiyev)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아제르바이잔 국영 은행인 아제르바이잔 국제은행(IBA, International Bank of Azerbaijan)의 회장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국가 금융의 심장부를 쥐고 있던 남편과 함께, 자미라는 아제르바이잔 최상류층의 삶을 영위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단순한 '부자의 삶'이 아니었다.

아제르바이잔은 구소련 붕괴 이후 정치적 혼란과 부패가 구조적으로 내면화된 사회였다.

국영 기업과 금융기관은 사실상 권력자들의 사유재산처럼 운용되었고, 막대한 자원은 소수의 엘리트 손에 집중되었다.

자한기르 하지예프는 그 구조의 핵심 수혜자 중 하나였다.


2005년, 자미라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납치를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그 사건은 이후 그녀가 영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계기가 된다.

아이 셋을 둔 어머니로서, 그녀는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찾아 런던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런던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아제르바이잔 부패·자금세탁 스캔들 관련 국제 보도 이미지 (출처: Bankwatch Network)


2부: 런던에서의 새 출발 — 그리고 멈출 수 없었던 소비


런던에 도착한 직후, 자미라는 해로즈 인근 나이츠브리지의 1,500만 파운드(약 250억 원)짜리 저택에 자리를 잡는다.

해로즈까지 도보 5분 거리. 그녀는 해로즈의 프라이빗 주차장 베이 두 곳도 소유했다.

그것은 상징이었다 — 이 백화점이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일상 그 자체였음을.


2006년 9월, 첫 구매는 소박했다.

어린이 도서 842파운드, 향수 140파운드.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몇 달 후 그녀는 카르티에 보석 카운터 앞에 섰고, 그 후 10년간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품목 지출 금액
부셰롱(Boucheron) 보석 약 350만 파운드
카르티에(Cartier) 보석 약 140만 파운드
덴니스 바소 패션 약 40만 파운드
해로즈 향수 코너 약 16만 파운드
장난감 코너 약 25만 파운드
디즈니 공주 체험(Bibbidi Bobbidi Boo) 약 9만 9천 파운드
총 합계 £16,309,077.87


2008년 6월 20일, 이 날은 역사적인 하루였다.

정오 직후 그녀는 해로즈 속옷 코너에서 925파운드를 썼다.

그로부터 1시간 3분 후, 카르티에 보석 코너에서 43만 3,389파운드(약 7억 원)를 한 번에 결제했다.

총 54장의 신용카드. 그 중 상당수는 남편이 회장으로 있던 아제르바이잔 국제은행이 발급한 카드였고, 그 대금은 결코 상환되지 않았다.


3부: 고난의 서막 — 남편의 몰락


화려한 소비 생활의 이면에는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2015년, 자한기르 하지예프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IBA 회장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같은 해, 아제르바이잔 당국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2016년, 자한기르는 IBA에서 22억 파운드(약 3조 6천억 원)를 횡령한 혐의로 아제르바이잔 법원에서 기소되었다.

사기, 직권 남용, 횡령 등 다수의 혐의로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9년에는 IBA 모스크바 지점에서의 추가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형량이 16년으로 늘어났다.


남편이 바쿠 감옥에 수감되는 순간, 자미라는 이제 혼자였다.

세 자녀와 함께 런던에 남겨진 그녀 앞에는 더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4부: 영국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다 — UWO의 등장


2017년, 영국 의회는 형사재정법(Criminal Finances Act 2017)을 통과시키며 새로운 수사 도구를 탄생시켰다.

바로 '설명되지 않는 부 명령(Unexplained Wealth Order)', 일명 '맥마피아 명령(McMafia Order)'이다.

BBC 드라마 시리즈 '맥마피아(McMafia)'에서 묘사된 것처럼 국제 조직범죄와 자금 세탁에 맞서기 위해 고안된 이 법률은, 수입에 비해 설명할 수 없는 자산을 보유한 사람에게 그 자산의 출처를 소명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당국에 부여했다.


2018년 2월, 영국 국가범죄수사청(NCA, National Crime Agency)은 자미라 하지예바를 대상으로 영국 역사상 최초의 UWO를 발동했다. 표적은 그녀 명의 또는 그녀가 관련된 법인 명의로 등록된 두 가지 자산이었다.


나이츠브리지 저택 — 시세 약 1,500만 파운드(약 250억 원)
버크셔 주 애스콧의 밀 라이드 골프클럽(Mill Ride Golf Club) — 170에이커 규모의 대형 골프장

 

NCA의 금융 조사관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자산이 취득된 방식과 그 이후의 처리 방식은 복잡하고, 비밀스러우며, 고도로 이례적이다. 충분하고 신뢰할 만한 설명이 없는 한, 이는 자금 세탁의 정황을 나타낸다."*


아제르바이잔 바쿠 리츠칼튼 호텔


▲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리츠칼튼 호텔. 석유 부국 아제르바이잔은 극도의 빈부격차와 부패로 악명 높다 (출처: Wikipedia)


5부: 법정 공방 — 그녀의 저항과 체계의 충돌


자미라는 굴하지 않았다. 그녀의 법률팀은 UWO에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그녀의 주장은 명확했다 

남편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어 결정적 증거와 문서를 제공받을 수 없고,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0년 2월, 영국 고등법원은 그녀의 항소를 기각했다.

같은 해 12월, 영국 대법원도 UWO가 적법하게 발동되었다고 최종 판결했다.

자미라는 아제르바이잔으로의 범죄인 인도 요청과도 싸워야 했고, 수년간 영국 사법 시스템과의 지난한 전투를 이어갔다.


법정 밖에서의 삶도 극적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NCA는 런던 저택의 구매 자금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등록된 비크스버그 글로벌(Vicksburg Global Inc.)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유입되었음을 밝혀냈다.

골프클럽 역시 건지(Guernsey)에 법인이 설립된 복잡한 오프쇼어 구조를 통해 소유되어 있었다.


2016년 8월, 자미라는 공식 문서상 골프클럽 실질 지배자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하루 만에 삭제되었다. NCA는 이를 "자신의 연관성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자금 이동 경로 (NCA 조사 결과):
IBA (아제르바이잔 국제은행)
    → 연결 계좌 / 차용증서(IOU) 구조
    → BVI 法人 (Vicksburg Global Inc.)
    → 런던 나이츠브리지 저택 구입 (2009년, 1,150만 파운드)

IBA
    → Guernsey 법인 (Natura Ltd)
    → MRGC Ltd (영국 법인)
    → 밀 라이드 골프클럽 소유

6부: 마침내 합의 — 18.5백만 파운드의 대가


6년이 넘는 법적 공방 끝에, 2024년 자미라 하지예바는 NCA와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나이츠브리지 저택과 밀 라이드 골프클럽, 총 합산 가치 약 1,850만 파운드(약 300억 원)의 자산을 영국 국가에 몰수당했다.


영국 정부는 매각 대금의 70%를 취득하고, 나머지는 자미라에게 반환하는 조건이었다.

NCA 자산압류 부서장 팀 쿼렐(Tim Quarrelle)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수사관들은 국제 금융 시스템을 가로질러, 복수의 관할권에 걸친 셸 컴퍼니들을 통해 이동한 복잡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이 결과는 맥마피아 명령 최초 발동으로부터 6년 반 만에 이루어졌으며, 영국으로 유입되는 불법 자금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증명한다."*
자미라의 변호인단은 합의가 법원의 사실 인정을 포함하지 않으며, 그녀의 지식이나 관여가 입증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끝까지 어떠한 불법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7부: 사회적·산업적 파장 — 이 사건이 바꾼 것들


자미라 하지예바 사건은 단순한 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건은 여러 층위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① 영국 최초 UWO 적용의 의미
이 사건은 '맥마피아 법'의 실효성과 한계를 동시에 시험대에 올렸다. 초기에는 강력한 반부패 도구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이후 다른 사건에서 NCA가 법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소송에서 패배하는 등 UWO 제도의 실질적인 한계도 드러났다.


② 고급 소비 시장의 허점 노출
10년간 1,630만 파운드가 단 하나의 백화점에서 사용되는 동안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반자금세탁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이후 영국은 AML 규정을 강화하고 고급 소비재 업계에 대한 규제 감독을 재점검했다.


③ 국제 부패 자금 유입 경로 공개
BVI, 건지, 파나마, 키프로스, 룩셈부르크를 거치는 다층적 오프쇼어 구조는 이후 국제 금융 투명성 강화 논의에 직접적인 촉매가 되었다.


④ 구소련권 부패의 서방 연루 공론화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구소련권 국가의 권력형 부패가 런던·파리·제네바의 부동산과 금융 시스템을 통해 세탁된다는 국제적 현실을 공론화했다.


아제르바이잔 세탁 관련 OCCRP 보도


▲ 아제르바이잔 30억 달러 자금세탁 스캔들 — '아제르바이잔 세탁소(Azerbaijani Laundromat)' 폭로 (출처: ANCA)


8부: 다섯 가지 핵심 교훈


💡 교훈 1: 불투명한 자산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오프쇼어 법인, 복잡한 소유 구조,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감춰진 자산도 결국 추적된다.

                   런던의 부동산 등기부터 비자 신청 서류까지, 흔적은 반드시 남는다.


💡 교훈 2: 시스템의 침묵이 공모를 만든다
                  10년간 누적된 1,630만 파운드의 지출이 아무런 경고 없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은, 반자금세탁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력화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규정의 존재와 그 이행은 전혀 다른 문제다.


💡 교훈 3: 법의 진화는 범죄의 진화보다 빠를 수 있다
                  UWO는 기존 형사 사법 체계로는 잡아낼 수 없었던 '설명되지 않는 부'에 새로운 법적 도구를 제공했다.

                  이 사건은 입법 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다.


💡 교훈 4: 개인의 삶은 구조의 산물이다
                  자미라 하지예바의 삶은 단순히 한 개인의 탐욕으로 설명될 수 없다.

                  부패가 구조화된 사회에서 권력 옆에 서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이야기는 보여준다.


💡 교훈 5: 진실은 영수증에 남는다
                 어떤 시대에도, 어떤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돈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해로즈의 93페이지짜리 결제 내역서 한 장이 결국 역사를 바꿨다.


에필로그: 황금 가방 안에 담긴 것


자미라 하지예바는 여전히 자신이 어떤 불법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 자신의 관점에서, 그것은 진실일 수도 있다.

그녀는 한 시대, 한 체제, 한 권력 구조가 만들어낸 삶을 살았다.

선택은 있었을지 모르나, 그 선택이 이루어진 맥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런던의 화려한 백화점 안을 가득 채운 황금 쇼핑백들 속에는, 아제르바이잔 국민의 세금과 눈물이 담겨 있었다.

국가 소유 은행이 횡령당한 22억 파운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학교를, 병원을, 도로를 지을 수 있었던 돈이었다.


자미라 하지예바 사건은 끝났다.

하지만 그 사건이 던진 질문들은 — 부패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돈은 어떻게 이동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보고도 못 본 척 하는가 —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있다.


황금빛 쇼핑백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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